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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고곡리 산73유적(高靈 高谷里 山73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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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고령 고곡리(산73번지) 공장신축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16-0717호
유적위치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 산73번지 발굴유형시굴, 정밀발굴
조사기간2016.06.20. ~ 2016.08.22.
조사면적시굴: 6,200㎡, 정밀발굴: 1,170㎡
유적종류분묘, 기타 유    형조선시대 토광묘, 수혈, 석열, 유물포함층
시    대조선시대
내    용

고령 고곡리 산73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조선시대 후기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광묘 18기, 수혈 1기, 석렬 1기, 유물포함층 1개소가 확인되었다.

근래에 과수원과 밭으로 조성되어 경작되면서 원지형이 삭평되어 묘의 봉분과 묘광의 상부는 대부분 멸실된 상태였고, 묘광 내부에 부장양상도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유구의 배치양상에서도 등고와 직교되게 묘광을 굴착한 양상 외에는 규칙성 없이 각각 별개로 배치되어 있어 특정집단의 묘역으로 판단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또한 묘광의 굴착양상 및 목곽과 목관의 설치 양상도 차이가 있어, 이것이 시기적인 특징인지 아니면 신분상의 차이인지도 분명하게 밝힐 수 없었다.

 

유적의 남쪽으로 약 200m 거리에 쌍림-고령간 국도건설공사 구간 내 유적에서 삼국~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분묘·주거지·건물지·수혈·토광묘·석렬·구상유구·송탄유 가마 등 89기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동편으로 약 300m 거리의 고령 안림리 유적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경작유구인 논이 확인된 바 있다. 이와 같이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안림리 일대에는 대가야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이 분포해 있는 정황이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비록 이번 고곡리 산73유적에서 확인된 분묘유구 등이 외형상 눈에 띠거나 출토유물이 빈약한 유적이지만 주변에서 확인된 유적과 더불어 당시 이 지역의 대가야~근대에 이르는 생활 및 분묘 유적에 관한 연구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