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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창평리 산2-1유적(奉化 昌坪里 山2-1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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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봉화 창평지구 저수지 둑높이기사업 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12-0494호
유적위치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산2-1번지 일원 발굴유형시굴, 정밀
조사기간2011,08.10. ~ 2012.05.03.
조사면적시굴: 24,000㎡, 정밀: 19,800㎡
유적종류생활, 생산, 분묘 유    형주거지, 고상건물지, 수혈,토기요, 구, 건물지, 와요, 탄요, 노지, 집석, 매납유구, 아궁이, 적석, 토광묘, 회곽묘
시    대청동기, 삼국, 고려, 조선, 현대, 시대미상
내    용

  봉화 창평리 산2-1유적의 발굴조사 결과, 전체 7개의 구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고상건물지, 수혈, 삼국시대의 주거지, 토기가마, 수혈, 구와 고려시대의 건물지, 주거지, 기와가마, 토광묘, 고상건물지, 수혈, 노지, 적심, 구, 집석, 매납유구, 아궁이 그리고 조선시대의 기와가마, 토광묘, 회곽묘, 수혈, 현대 탄요와 시대미상의 탄요, 토광묘, 수혈, 노지와 주혈군 등 모두 263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이 유존하는 7개 구역은 크게 지형적인 입지상 능선의 사면부와 곡간 퇴적부로 구분된다. 능선의 사면부인 제Ⅰ~Ⅴ구역에서는 삼국시대~현대의 가마와 고려~조선 및 시대미상의 토광묘가 주로 조성된 반면, 곡간 퇴적부인 제Ⅵ·Ⅶ구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삼국시대 주거지, 고려시대의 건물지, 주거지 등 주로 생활유구가 조성되어 있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봉화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사례이다. 특히, 청동기시대 전기의 유물로 편년되는 호형토기, 공열문토기편이 출토되어 향후 영주와 봉화지역을 포함한 경상도 북부권의 공열문토기의 분포를 통한 역삼동식토기문화의 확산·전파경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시대 유구는 가마와 주거지, 수혈, 구 등 상대적으로 소수만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유물이 수혈에서 출토되었는데, 고식도질토기를 비롯하여 전형적인 신라양식의 고배와 대부완 등 5세기대 토기가 혼재되어 있어 유적의 명확한 성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한편, 제Ⅱ구역의 토기요에서 출토된 경질무문토기계의 타날문토기편은 중부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는 장란형토기로 4세기대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당시 소백산맥 이남인 봉화지역에서 이러한 토기가 생산된 점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수량이 토기편 1점에 불과하여 면밀한 검토가 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게 생각되며, 추후 자료의 증가를 기대할 뿐이다.

  고려시대 유구는 상대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며, 대부분 제Ⅵ·Ⅶ구역에서 건물지, 주거지, 수혈, 구 등이 확인되었다. 건물지는 상부구조가 모두 유실되어 정지층 또는 하부 수혈만이 확인되는 형태이지만, 주거지는 구들시설을 갖춘 것, 한쪽 벽면을 석축한 것, 내부의 가장자리에 대칭되게 기둥을 세운 6주식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고려시대 유구의 조성시기는 출토된 유물 중 청자류의 제작기법과 기종을 근거로 12세기대로 편년하였고, 건물지와 주거지 및 다양한 청자류의 존재로 보아 당시 이 지역에는 어느 정도의 규모와 권위를 갖춘 취락이 유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유구는 와요, 회곽묘, 토광묘가 조사되었다. 와요는 17세기대에 조업된 것으로 파악하였고, 회곽묘와 토광묘는 출토된 백자류의 속성으로 보아 16~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하였다.